조선시대에 '신분'과 관계없이 지원 가능하며 개인의 능력에 따라 양반보다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그 직업은 바로 '궁녀'입니다. 궁녀는 왕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왕과 왕실 사람들을 시중들기 위해 궁 안에서 생활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죠. 개인의 능력에 따라 양반보다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궁녀가 되려면 어떤 과정들을 거쳐야했을까요?


궁녀 선발기준 - feat. 앵무새감별법


궁녀는 10살 전후로 입궁해 나인과 상궁을 거쳐, 늙을 때까지 궁에서 생활하는 전문직이었습니다. 부정행위 또는 생명을 잃지 않는 한 인원 변동이 없기 대문에 10년에 한번꼴로 채용되었고 양반보다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만큼 경쟁률 또한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되기 위해선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숫처녀 검사'입니다.



feat.앵무새감별법


궁녀가 된 순간부터 '왕의 여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거쳐가야했던 '숫처녀 검사'입니다. 검사 방법은 매우 특이한데 바로 앵무새의 피를 예비 궁녀의 팔목에 묻혀보고 그것이 묻으면 처녀, '피가 겉돌고 흘러내리면 처녀가 아니다'라고 보았습니다. 의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 아니지만 조선시대에서는 이 방법을 매우 중요시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방법은 중국과 아랍에서도 볼 수 있는데 중국은 첫날밤 관계를 맺은 후 흰 비단에 묻은 낙홍으로 확인했고 아랍권에서는 남편이 오른손 집게손가락에 하얀 헝겊을 씌운 후 그곳에 넣어 천에 묻은 피를 보고 순결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궁녀로 선발되면 '생각시'라는 불리는 견습 나인 생활을 하다가, 10년이 지나면 정식 나인으로 임명됩니다. 그녀들은 지밀, 침방, 수방, 소주방, 생과방, 세수간, 세답반 등 다양한 업무로 나뉘어졌고 보통 8시간 일하고 그 다음날 쉬는 격일 근무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지금 보면 공무원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듯 싶네요.



월급도 받았다?


남성 권위적인 조선 사회에서 '여성'들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세웠고 그 당시 높은 월급을 받았던 '여성 전문직'이었습니다. 정식 나인이 된 궁녀가 받는 월급은 쌀 4말, 콩 1말 다섯 되, 북어 3마리였는데 품계가 높아질수록 월급도 올랐다고 합니다. 궁녀의 최고 지위였던 '제조상궁'이 되면 쌀 25말과 콩 다섯 되, 북어 110마리를 받았는데 그것은 쌀 20말을 받던 정3품관리보다 많은 월급이었죠.


궁녀의 은퇴


아무리 신분이 보장된 궁녀라 해도 궁궐 안에서 죽을 순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일을 할 수 없거나 자신이 모시던 왕 또는 왕비가 죽으면 삼년상을 치룬 뒤 출궁하게 됩니다. 이 때 비슷한 처지였던 궁녀끼리 모여 노후를 보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출궁을 하더라도 결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양반보다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함께 생을 보낼 수 없다는 가족이 없다는 점에서 외로울 것 같네요.




그래도 중국의 궁녀들처럼 황제가 사망했을 때 함께 순장되었다는 기록과 비교하면 조선 궁녀는 양반인 것 같네요. 저도 만약 그 당시의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궁녀가 되려고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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