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고구려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만큼 영토를 크게 확장한 나라도 드믈고,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이라 선포한 나라인데요. 중국을 통일시켰던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에서도 대승을 거두며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거듭나게 되죠.


아주 작은 나라에서 시작한 나라가 어떻게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저와 함께 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수레의 발달


고구려 고분 벽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륜 수레입니다. 수레를 가장 잘 활용한 나라로 알려져있는데요. 그만큼 군사와 경제를 이끌었던 축이었습니다. 건국 이후 주변 국가를 복속시켜 그 지역의 행정 중심지를 연결하는 도로망을 확대하고 부대의 이동과 군수물자 수송을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바탕으로 중앙집권체제를 빠르게 확립하였고, 지리적 특성상 유목국가와 농업국가가 만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어 두 국가 간의 교역을 중계하며 막대한 이득을 챙겼습니다. 건국 초부터 도로망과 수레를 잘 활용하면서 자연스레 상업이 발달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죠.


어릴 때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로 무예 출중


고구려인들은 어릴 때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로 무예를 갈고 닦았습니다. 또, 무술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면 신분이 오를 수 있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연습을 했죠. 대표적인 예로 '온달 장군' 입니다. 우리에겐 바보온달로 알려져있지만, 평민집안에서 태어나 무술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대형(大兄) 자리에 오르기도 합니다.




축성기술과 방어망


고구려가 아무리 강한 군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나 수적으로는 중국에게 밀렸습니다. 수적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있었던 배경은 축성기술과 방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들은 험한 산에 위치하고 있고 견고할 뿐만 아니라 위 사진처럼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쌓은 구조물인 치를 활용해 적을 측면에서도 공격할 수 있었고 많은 병력이 집결하지 못하도록 해 방어에 유리하였죠.



또, 횡으로는 성들이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고 종으로는 중요한 길목마다 성을 배치해 성 하나를 함락당하더라도 방어선이 붕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다 격파하지 않는 이상 수도를 공략할 수 없었죠.


철기술 발달


고구려의 영토였던 요동지방의 안시성 일대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철광산이 있었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철기 문화가 발달하였는데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그 이상. 최근 아차산성에서 대규모 유적이 발굴되었을 때 검증해본 결과 고구려의 화살촉은 평균 탄소함유량 0.51%로 현대의 강철과 대등할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화살촉으로 그 당시 일반 갑옷을 재현해 쏜 결과 5장을 가뿐히 관통할 정도로 위력적이었고, 갑옷은 다른 나라 화살촉이 뚫지 못할 정도로 촘촘하게 만들어졌고 그로인해 수적열세를 극복하고 적군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전성기 → 흥하다


전성기를 이끈 광개토대왕은 한때 백제를 복속시켰고, 신라를 쳐들어온 왜군을 낙동강 유역에서 물리치고 후연을 격파해 오랜 숙원이었던 요동지방을 포함한 만주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의 아들 장수왕이 체제 정비의 필요성을 느껴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한강 유역의 주도권을 잡는데 성공하죠. 이렇게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영토 확장과 나라의 기반을 잡음으로써 고구려는 더욱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연이은 전쟁과 연개소문이 죽으며 아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났고 그 사이에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한 나당연합이 쳐들어오면서 강하고 강했던 고구려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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